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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거론 안됐는데 심 의원 민감한 반응 왜?
‘대화의 희열’ 방송 어떤 이야기 있었나?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1980년 ‘서울의 봄’ 등 당시 민주화 운동, 특히 ‘서울역 회군(1980년 5월 15일)’과 그 이후 상황 등을 회고했다. 유 이사장은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현장에 있었다.
그는 방송에서 “(체포됐을 때보다) 무섭기는 그 이틀 전 서울역에서 집회할 때가 진짜 무서웠다. 선배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올라가서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속으로는 무서워 죽겠는데, ‘해산하면 안 된다, 여기서 계속해야 한다’라고 하고 내려왔는데 너무 무서웠다. ‘군인들이 들어오면 나는 죽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그 외에도 계엄군사령부 합동수산본부에 끌려가 구타당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글 쓰는 걸 잘 하는 걸 그 때 알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진술서를 쓰면 안 때려서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며 “최대한 창작을 해야 한다, 기억이 안 나는 건...나는 한 대라도 덜 맞아보려고, 최대한 상세하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누구를 붙잡는 데 필요한 정보는 노출 안 시키고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걸로, 언제 어디에서, 어느 대학, 어느 대학 누구가 신촌 어느 중국집에서 밥을 뭘 먹었는지 다 쓴 거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심 의원이 민감하게 반응한 까닭은 그 역시 관련 사건들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심 의원도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거기에 있었다.
80년 서울역 회군에 대해서도 심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역 회군은 당시 철수하지 않았어야 하고 희생을 불사하고라도 청와대로 진군했어야 한다는 일부 급진적인 운동권 논리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에 ‘서울역 철수’가 맞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강하현기자
996호 2019년 5월 8일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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