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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성, 31년 지방자치 역사 함께 한 산증인
최연소 , 최다선 시의원·의장, 가시 밭길서 생존한 정치인
목포시의회 최다선 의원(5선), 33세 최연소 무소속 목포시의회 의원 당선 및 목포시의회 의장’
지방자치와 역사적 맥을 함께 해온 장복성 목포시의원은 김대중 정신과 궤적을 함께 해온 진짜 정당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1월 25일 목포해양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창당 발기인 대회장은 그에게 각별한 날이다. 1987년 27살 최연소 나이로 평화민주당 창당 대회에서 사회를 본 후 정확히 30년이 흐른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그가 김대중 정신을 외쳤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정치인으로 각광받은 장 의원에게 정치는 삶이며 인생이다. 31년 만에 다시 창당의 현장에 서 있지만 정치는 자신에게 쉽고 고운 길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연소 사무국장, 청년조직국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1995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현역 시의원이었던 신재돈 씨와의 역학 구도에서 입장이 난처해진 지역구 국회의원이 무내천 지역을 선포하며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했다. 서슬퍼런 민주당의 바람이 거세던 시기였지만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승리했다. 당시 33살 최연소 무소속 시의원 당선이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따라왔다.
그 이후에도 장 의원의 정치적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8년 지역구가 조정되면서 대성 1동과 대성 2동이 하나의 지역구로 통합되었고 당시 김홍일 의원 선거사무장을 맡았던 장 부의장은 현역 의원들과 또 한차례 결전을 해야 했다. 당의 1등 공신이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지만 자생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장 의원은 늘 쉽고 편한 길보다 처절한 전투라 예상되는 경쟁의 한복판에서 전투를 펼쳐야 했다.
“정치를 시작한지 31년을 곧 목포의 역사의 궤적이다”는 장복성 시의원은 “너무 일찍 시작한 정치 인생을 통해 주군을 올바로 모시는 법,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삶의 깊이 있는 철학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실제 장 의원은 권노갑, 김홍일, 이상열, 현재 박지원 의원 등 국회의원만 4명을 모셨다. 모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동교동계의 산 증인들과 나란히 정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길은 2002년 김홍일 국회의원의 사무처장을 맡을 당시 무투표 당선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처절한 전투를 통해 정치권에서 살아 남은 자생력으로 무장된 ‘정치 달인’이다. 5선 최다선 시의원 뿐 아니라 잔여 임기를 포함해 시의회 의장을 3번 역임한 이력도 보기 드문 경력이다.
그만큼 주민과 소통의 폭이 넓고 진심을 담은 의정활동으로 지역민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제 삶은 늘 초심으로 일하겠다’는 변치 않는 삶의 철학을 그대로 실 생활에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당이 위기일 때 고민도 많았고 정치 출마를 접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대중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기에 이 길을 다시 걷는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요즘 새벽 5시부터 지역구를 돌며 지역민과 소통하는 뚜벅이 보폭 행보를 다시 시작했다. 진짜 일하는 소통맨으로 주민에게 평가 받기 위해서다. /박근영기자
목포투데이(www.mokpotoday.com) 제938호 (2018. 2. 2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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