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루미에르 사진작가의 카메라 밖 기억 17화
빛은 땅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 입력 : 2025년 10월 15일
|
사진작가 K. Lumiere는 한국의 계절과 골목, 그리고 빛을 따라 걷는 감성 사진가이자 이야기 수집가입니다. 셔터는 빛을 기록하고, 글은 기억을 복원합니다.
K. 루미에르 사진작가의 카메라 밖 기억
17화
빛은 땅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17회차 그녀는 성당 조각상 뒤편으로 발을 옮겼다. 수천 번 지나쳤던 길이지만, 이렇게 조용하고, 깊게 어두웠던 적은 없었다. 루미에르의 구두가 자갈 위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달빛은 희미했고, 가로등도 고장 난 듯 깜빡였다. 그러나 그녀는 빛보다 확신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는 성당의 작은 철문 앞에 멈췄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반쯤 떨어져 나간 채, 덩굴에 파묻혀 있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딸깍. 철문이 열리자, 습한 땅의 냄새가 퍼졌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국의 향. 이질적인데, 묘하게 그리운 냄새였다. 좁은 돌계단이 땅 아래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기도실이 숨겨져 있었다. 아니, 기도실이었던 무언가. 먼지 쌓인 벤치, 녹슨 촛대, 그리고 깨진 유리 조각들. 벽면에는 정체불명의 언어로 쓰인 오래된 메모들이 찢어진 채 붙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한 벽면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바랜 사진 속엔 한 남자와 한 여자. 남자의 얼굴은… 너무 익숙했다. 그의 눈동자. 그의 입꼬리. 그녀의 꿈속에 나왔던 그 미소. 그리고 그 옆의 여자.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속 그 여자의 얼굴은… 놀랍게도, 루미에르와 거의 똑같았다. 숨이 멎는 듯한 충격. 그 순간, 기도실 가장 안쪽에서 “쾅.”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구… 누구 있어요?" 루미에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벽면에서 형체를 드러냈다. “너무 일찍 왔군.” 그림자는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빛이 닿지 않는 이상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넌 누구야?" 루미에르가 물었다. 그림자는 한참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낮게, 천천히 말했다. “나는, 너의 다른 시간이다.” “······무슨 말이야?” “여기엔 시간이라는 게 직선으로 흐르지 않아. 너는 지금, 너의 과거와 미래가 겹치는 틈에 들어온 거야.” "말도 안 돼… 나는 그냥 사진을 찍으러 왔고…" "아니. 넌 돌아온 거야. 그가 널 기다리던, 그 계절로." 그림자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기도실의 중앙, 촛대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 너의 첫 번째 편지가 묻혀 있어.” “편지…?” “잊은 줄 알았지. 하지만 어떤 기억은, 잊힌 게 아니라 봉인된 거야.” 루미에르는 촛대 아래의 바닥을 조심스레 들추기 시작했다. 먼지와 부서진 나무 조각들 사이에서, 진짜로… 오래된 봉투 하나가 나왔다. 누런 봉투. 겉면엔 흐릿한 필체로 쓰인 단 세 글자. “루미에르”
18회차 “잊힌 편지, 기억의 틈에서” 루미에르는 손끝으로 봉투를 더듬었다. 표면은 마치 오래된 나뭇잎처럼 바스락거렸고, 그 이름—"루미에르"—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쓰인 것처럼.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손끝에 집중한 채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단 한 장의 편지. 노란 종이 위에 푸른 잉크로, 또렷하지만 떨린 필체가 남아 있었다. 루미에르에게. 언젠가 네가 이곳에 다시 온다면, 그건 시간이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우리를 다시 불러낸 것일까. 넌 이곳에서 나를 떠났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날의 선택, 그날의 조각들… 나는 아직도 그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널 원망한 적은 없었다. 네가 남긴 마지막 말— “빛이 사라져도, 너는 나의 눈이다.” 나는 그 말만으로 여태 살아 있었다. 루미에르.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넌 기억하고 있을 거야. 우리 둘만 아는 장소. 우리 둘만 아는 비밀.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편지를 읽는 동안 루미에르의 눈동자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건 눈물이 아니었다. 정확한 이미지 하나. 그녀가 잊었다고 믿었던 한 장의 사진. 수년 전, 파리의 뒷골목. 빛이 극적으로 휘몰아치던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엔… 자신도 모르게 등을 돌려 떠나는, 그 남자의 뒷모습. 왼손엔 검은 장미 한 송이. 그녀는 몸을 돌려 기도실을 빠져나갔다. 손에는 편지를 꼭 쥔 채, 다시 성당 담벼락을 따라 나왔다. 성당 벽 위의 조각상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조각상의 눈이 살짝 감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다렸구나… 나를.” 그녀는 처음으로 조용히, 담담하게 말했다. 그 순간, 멀리서 누군가 사진을 찍는 듯한 셔터 소리가 들렸다. 찰칵. 루미에르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어둠을 걷고 있는 또 다른 발소리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19화 다음 신문 계속>
2025.10.15. 제1306호 15면
|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  입력 : 2025년 10월 15일
- Copyrights ⓒ목포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링크
|
|
지역정치
지난 대선 때 목포시는 전체 선거인수 183,659명 중 145,187이 투표에 참가하여 이재명 후보에게는 125,790명(86.6%), 국민..
기흭특집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몸의 여러 가지 변화를 많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