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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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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수다 /
내 청춘의 일터, 목포투데이를 떠나며
“자네 목포에 대해서 뭘 알기는 아는가?” “아직도 목포투데이에서 일해요? 와따 오래도 하요이~”, “저번주 기사 보니 누가 우리 박기자님 심기를 불편하게 했구나 생각하다 밥한끼 먹자고 전화드려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 사는 그들의 이야기가 좋아 대학 졸업 후 1999년 첫 발을 내딛은 첫 직장. 학연지연 모든 연고도 없던 20대 초반 목포라는 낯선 땅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모두 생소했습니다.
다행히 여기자가 없던 시절 열정만으로 사방팔방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던 22년 전 1999년부터 지역의 내놓으라하는 어르신들의 격려와 배려 덕에 비교적 무난히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열정만으로 권력과 맞섰던 소송 5건, 서로 언성높이고 얼굴붉혔다가 술로 풀었던 취재원들, 각별한 애정을 독자 40명 확보로 보답해준 지인들까지 모두가 저의 삶을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벗들이었습니다.
목포투데이에서 22년 전 숙식하며 새벽 2시, 3시 광주 인쇄소 안갯길을 오가며 신문을 배달했던 사명감을 가졌던 시절이 추억처럼 스칩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의 시절 목포투데이에서 쏟았던 열정의 원천은 가족 같은 동료들, 미숙한 기사의 오타까지 세밀히 읽어줬던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40대 중반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그 곳에서도 열정으로 지역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꾸벅, 절 올립니다. <박근영기자>
2020년 10월 28일 제1069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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