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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두 얼굴/ 10회 시리즈 - 예고편 이어 본격 시리즈 3회...미래를 잇는 다리인가, 지역을 가르는 균열인가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1343호입력 : 2026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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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두 얼굴/ 

10회 시리즈 - 예고편 이어 본격 시리즈 3회
미래를 잇는 다리인가, 지역을 가르는 균열인가


예멘 통일 1990, 하나가 됐지만, 국가는 다시 찢어졌다



“통합은 선언으로 시작됐지만, 배분 실패는 내전으로 돌아왔다”

1990년 5월 22일, 북예멘과 남예멘은 하나의 국기를 올렸다.
분단됐던 두 나라가 ‘예멘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을 선언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북예멘은 보수적 부족·군사 정치 기반의 국가였고, 남예멘은 아랍권에서 드물게 사회주의 체제를 운영했던 나라였다. 냉전이 끝나가던 시기, 두 예멘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뒤로하고 하나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멘 통일은 축제로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4년 뒤인 1994년, 남부 세력은 다시 분리 독립을 선언했고, 북부 중심의 정부군과 남부 세력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전쟁은 북부 중심 세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순간부터 예멘의 통합은 더 깊은 상처를 안게 됐다.
예멘은 통합을 했지만, 하나가 되지 못했다.
국기는 하나였지만 권력은 하나로 나뉘지 않았다.
정부는 하나였지만 신뢰는 둘로 갈라졌다.

1. 통합의 첫 얼굴 -
냉전 끝, 찾아온 ‘하나의 예멘’ 꿈

예멘은 원래 하나의 생활권과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북부와 남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북예멘은 오랜 왕정과 공화정 전환, 군부 정치, 부족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움직였다. 수도 사나를 중심으로 한 북부 정치는 군사력과 부족 동맹, 종교적 보수성이 강했다.
남예멘은 영국 식민지였던 아덴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1967년 독립 이후 남예멘은 사회주의 노선을 택했고, 소련과 가까운 국가가 됐다. 항구도시 아덴은 남예멘의 상징이었다. 북부의 산악 정치와 남부의 항구·사회주의 정치는 같은 예멘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전혀 다른 체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말, 세계 질서가 흔들렸다.
소련이 약해지고 냉전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남예멘은 가장 큰 후원자를 잃었다. 경제는 어려워졌고, 내부 정치 갈등도 깊어졌다. 북예멘 역시 경제적 한계와 정치적 불안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두 예멘은 통일을 선택했다.
1990년 5월 22일, 북예멘의 예멘아랍공화국과 남예멘의 예멘인민민주공화국은 예멘공화국으로 합쳐졌다. 현대 예멘 국가는 이때 출범했다.
통일 당시 구상은 그럴듯했다.
북부의 알리 압둘라 살레가 대통령이 되고, 남부의 알리 살림 알비드가 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다. 남북의 집권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갖는 듯한 구조였다. 의회와 정부도 일정 기간 과도체제로 운영하며 통합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종이 위의 통합은 균형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권력의 무게추는 빠르게 북부로 기울었다.

2. 통합의 두 번째 얼굴 -
권력 배분 실패

예멘 통일의 핵심 문제는 행정구역을 합친 뒤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통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인가, 군대 지휘권은 어디에 있는가, 예산 배분권은 누가 갖는가, 석유와 항구 수입은 어떻게 나누는가, 공무원과 군인은 어느 기준으로 통합되는가이다.
예멘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북부의 살레 대통령과 그의 지지 기반은 통일정부의 중심을 장악해갔다. 남부 정치세력은 자신들이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밀려나는 세력으로 취급된다고 느꼈다. 남부의 군과 관료, 정치인들은 통합 이후 요직에서 배제되고, 남부의 자원과 항구, 경제 기반이 북부 권력에 흡수된다는 불만을 키웠다.
1993년 총선은 갈등을 더 키웠다.
통일 초기에는 북부 집권세력과 남부 사회주의 세력이 권력 균형을 맞추는 듯했지만, 선거 이후 정치 세력의 힘 관계가 달라졌다. 사나아전략연구센터는 1993년 총선이 통일협정에 깔려 있던 북부 국민회의와 남부 사회당 사이의 권력 균형을 흔들었다고 분석한다.
통합은 숫자로만 설계하면 무너진다.
의석 수, 장관 자리, 기관 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 지역이 “우리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예멘에는 그 장치가 약했다.

3. 1994년 내전 -
통합 4년 후 다시 갈라진 나라

통합 4년 만에 예멘은 전쟁으로 갔다.
1994년 5월, 남부 세력은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남부는 통합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자신들이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패배자처럼 밀려났다고 봤다. 북부 중심의 정부군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쟁은 짧았지만 예멘의 국가 정체성에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미국 국무부의 1994년 예멘 인권보고서도 1990년 통일 뒤 몇 년간 비교적 평온한 과도기를 거쳤지만, 곧 ‘통합 위기’가 발생했고 1994년 5월 남부의 분리 시도와 함께 내전이 터졌다고 기록했다.
전쟁 결과는 북부 중심 정부의 승리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겼다고 통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뒤 남부에는 더 깊은 패배감이 남았다.
남부 주민들은 “우리가 함께 나라를 만든 파트너였나, 아니면 정복당한 지역이었나”라는 질문을 품게 됐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예멘의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통합에서 군사적 승리는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상대 지역을 군사적으로 눌렀다고 주민의 마음까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통합은 행정의 이름을 단 점령처럼 보일 수 있다.

4. 예멘의 통합의 실패 공식

예멘 통일은 우리에게 통합 실패의 공식을 보여준다.

첫째, 통합을 너무 빨리 했다.
두 체제는 서로 너무 달랐다. 북부와 남부는 정치문화, 군사조직, 경제구조, 행정 경험, 외교 노선이 달랐다. 이런 차이를 충분히 조정하지 않은 채 통일국가를 선언했다.
둘째, 권력 배분 장치가 약했다.
통합의 핵심은 “누가 중심인가”를 정직하게 묻는 일이다. 예멘은 남북이 함께 운영하는 듯했지만, 실제 권력은 북부 중심으로 집중됐다.
셋째, 군대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했다. 군대는 국가의 최종 권력이다. 남북의 군이 진정으로 하나의 지휘체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갈등은 언제든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다.
넷째, 자원과 예산 배분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남부는 항구와 자원, 경제 기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통합 이후 그 이익이 공정하게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다섯째, 패배한 지역의 자존심을 돌보지 않았다.
통합은 상대의 이름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제도와 인물, 역사와 자존심을 새 국가 안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다.
예멘은 이 다섯 가지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5. 2014년 이후의 내전 -
통합 실패의 긴 그림자

예멘의 비극은 1994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살레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국가는 안정되지 않았다. 2014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면서 예멘은 다시 대규모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 이란과 가까운 후티 세력, 남부 분리주의 세력, 국제사회가 얽히며 예멘 전쟁은 지역 패권 갈등의 현장이 됐다. CFR은 현재의 예멘 전쟁이 이란과 연계된 후티 반군과 사우디 주도 연합이 맞서는 대리전 성격을 띠게 됐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멘의 현재 위기가 단순히 후티 반군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0년 통일 이후 풀리지 않은 남북 갈등, 1994년 내전의 상처,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 지역별 군사세력의 분열, 남부의 분리 독립 요구가 계속 쌓여왔다. AP통신은 2026년에도 남부 분리주의 세력이 과거 남예멘 영토를 기반으로 독립국가 구상을 내세웠다고 보도했다.
즉, 1990년에 하나가 된 예멘은 3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통합의 숙제를 끝내지 못했다.
국가는 하나라고 말했지만, 권력은 여러 개로 쪼개졌다.
국경선은 하나였지만, 실제 지배 지역은 다시 갈라졌다.
통합의 실패가 세대를 넘어 전쟁의 씨앗이 된 것이다.

6. 목포권 통합 논의가
예멘에서 봐야 할 장면

예멘은 독일과 다르다.
목포권 통합 논의와도 규모, 역사, 종교, 국제정치 조건이 다르다. 예멘 사례를 그대로 가져와 지역 통합 논의에 덮어씌울 수는 없다.
그러나 통합의 원리는 닮아 있다.
통합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갈등이 된다.
통합은 중심과 주변을 잘못 만들면 원한이 된다.
통합은 권력과 예산을 공정하게 나누지 않으면 분열의 씨앗이 된다.

목포권에서 통합을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합치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예멘은 묻는다.

누가 중심이 되는가.
누가 이름을 잃는가.
누가 기관을 가져가는가.
누가 예산 배분권을 쥐는가.
누가 일자리를 잃고, 누가 새 권력을 얻는가.


통합 이후 밀려나는 지역의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통합은 위험하다.
특히 지역 통합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청사, 인사, 예산, 개발축이다.
청사가 어디에 놓이는가에 따라 주민은 중심과 주변을 느낀다. 공공기관이 어느 지역에 남는가에 따라 상권과 인구 흐름이 달라진다. 예산 배분 원칙이 무엇인가에 따라 통합은 상생이 될 수도 있고 흡수가 될 수도 있다.
예멘은 말한다.
통합의 문서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신뢰다.

7. 통합은 ‘한 지붕’보다
‘공정한 방 배치’가 먼저다

예멘 통일의 가장 큰 교훈은 간단하다.
한 지붕을 만들었다고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방이 공정하게 배치돼야 한다.
식탁의 자리가 존중돼야 한다.
돈을 누가 벌고, 누가 쓰고, 누가 결정하는지 투명해야 한다.
예멘은 한 지붕을 급히 올렸다.
그러나 방 배치가 공정하지 않았다.
식탁의 자리가 불안했다.
곳간 열쇠를 누가 쥐는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 결과 통합은 국가의 힘이 아니라 내전의 불씨가 됐다.
목포권 통합 논의도 이 대목을 봐야 한다.
통합을 주장하는 쪽은 먼저 장밋빛 그림이 아니라 냉정한 설계도를 내놔야 한다.
청사와 기관 배치, 예산 배분, 낙후지역 보상, 인사 원칙, 기존 도심 보호, 주민투표 방식, 통합 이후 10년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통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통합은 계약으로 하는 것이다.
그 계약이 공정하지 않으면 통합은 축제가 아니라 싸움의 시작이 된다.
독일은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통합을 버텼다.
예멘은 권력 배분에 실패하며 통합을 전쟁으로 잃었다.
통합의 두 얼굴은 여기서 갈린다.
하나는 비용을 감당한 통합이다.
다른 하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통합이다.
목포권이 통합을 말하려면, 먼저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원하는가.
아니면 함께 살 수 있는 공정한 질서를 원하는가.


예멘 통일이 남긴 5가지 경고

1. 통합은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다.
2. 권력 배분이 불공정하면 통합은 흡수로 보인다.
3. 군대·조직·공무원 인사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하면 갈등은 폭발한다.
4. 중심과 주변을 잘못 만들면 지역의 자존심이 무너진다.
5. 통합 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분열은 더 깊어진다.

/정태영박사
(다음호 계속)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1343호입력 : 2026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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