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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명 민주화운동 인사 겨눈 칼’배신자 논란 휩싸인 유시민

학생운동과 감옥, 작가 재능 발견의 계기였다?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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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명 민주화운동 인사 겨눈 칼’배신자 논란 휩싸인 유시민
학생운동과 감옥, 작가 재능 발견의 계기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로 ‘민주화운동 동료 배신자’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유 이사장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본)에서 쓴 진술서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유 이사장은 지난 1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배신자 논란’에 대한 해명과 동시에 심 의원에게 ‘합수부 진술서 동시공개’를 제안했는데, 실제 심 의원이 6일 자신의 블로그에 본인과 유 이사장의 자필 진술서 원본을 공개한 것이다. 

지난 4월 20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60)은 KBS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하루에 진술서 100장을 쓴 적이 있다.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진술했다.

‘어떻게 작가로서의 재능을 찾게 됐느냐’는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가 1980년 학생운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유 이사장은 당시 계엄법 위반 혐의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고문과 협박을 당하며 장문의 진술서를 작성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를 잘 써서 비밀조직에 속한 동지들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다며 ‘학생운동’과 ‘감옥’이 재능 발견의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방송에 나가자 당시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61)이 “유 이사장이 진실을 왜곡하는 예능의 재능을 발휘했다”고 공격했다. 이후 심 의원과 유 이사장은 보도자료와 페이스북 글,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39년 전 이야기에 심 의원은 왜 발끈한 걸까. 

이에 목포투데이신문은 논란이 되고 있는 유시민 이사장의 당시 진술서 전문을 전격 공개한다.

<진술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유시민

1. 저는 일전에 미처 진술하지 못한 사항이나 잘못된 사항, 불명확한 사항을 상세히, 잘못을 수정하고 명확하게 진술코저 합니다.

1. 저는 3월 10일 경 오후 1시에 7동 102호 강의실에서 개최된 경제학과총회에서 경제학과 과회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총대의원회의 대의원 자격을 취득하였읍니다.

1. 1980.3.15.경 오후 2시쯤 사회대학생 회실에서 사회대대의원회의를 열고 있었는데 안건은 아마 신입생환영체육대회 개최 문제였을 것입니다. 

이때 현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재철이 찾아왔읍니다. 총학생 회칙상 총학생회장은 각과대표 및 계열대표 124人으로 구성되는 총대의원회에서 간접선거로 뽑게 되어있었고 입후보 요건으로 최소한 10人 이상의 대의원 추천서를 입후보 마감 시간 전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토록 되어있었으므로 심재철이 사회대 대의원들의 추천을 받으러 사회대학생회실로 찾아온 것이었으며 그냥 추천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몇마디 질의응답을 해보았는데 그때 심재철은 써클활동의 자유, 학내언론자유, 집회의 자유 등 “잃어버린 권리의 회복을 모토로 삼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것이 저와 심재철의 첫 대면이었읍니다. 

그후 3월 28일 이전까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금전수수, 음식, 술대접 등은 전혀 없었으며 선거유세 할 때만 청중 속에 섞여 심재철이 연설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심재철은 3월 24일과 27일 양일간 오후 1시 아크로폴리스에서 연설하였는데 그의 모토는 교내의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회복과 유신잔재청산, 대학문화혁신의 3가지 였다고 알고 있읍니다.

1. 3월 18일경 사회대 대의원회의를 하는 도중 사회학과 대의원인 유현오, 정치학과 대의원 김종명, 외교학과 대의원 전상훈 등이 “사회대는 대의원 수도 11명으로 많고하니 총대의원회의장을 우리 사회대에서 배출해보자. 사회대에서는 항상 경제학과가 제일 규모도 크고 리이더격이니 유시민을 후보로 내어보자”고 주장하였고 총학생회칙상으로 볼 때 총대의원회의는 그리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고 학기초와 학기말 그리고 선거할 때 열리므로 그리 시간을 많이 뺏길 것 같지도 않고 대학생활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저도 승낙하였읍니다.

1. ①3월 28일 13:00부터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열린 제1회 총대의원회의에서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기 직전에 총대의원회의장 선거가 있었읍니다. 총대의원회의장은 총학생회장과는 달리 실무나 집행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총학생회장이 너무 독단적이거나 부정이 있을 때 총대의원회의를 소집하여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며 학기초와 말에 예산 및 결산 심의·승인을 위하여 총대의원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그 주임무이므로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거유세나 합동연설 없이 그 자리에서 출마하여 약 20분만에 선출되었읍니다. 저는 그때 공대 조선공학과 대의원인 이원태군과 경합한 끝에 80:31로 당선이 확정되었고 약 5분간의 소견발표에서 저는 “학생회는 순수한 학생자치기구이며 우리는 단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모든 외부 세력으로부터 학원의 순수성과 독자성을 수호하여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 바 있읍니다. 

② 같은 날 동의장선출이 끝나고 나서 총학생회장선거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공대의 양 지청후보가 사퇴하였으므로 총인원 124명 중 114명이 투표한 이 선거에서 심재철(사대 영어과4)이 김기달(치대본과4) 후보를 92:22로 누르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읍니다. 

③이 날 선거가 끝난 후 인문대 대의원 회의에서 채택된 병역집체훈련 거부 결의문이 총대의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되었으나 저는 그것을 다음번 총대의원회의의 안건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여 그날 토론에 붙이지는 않았읍니다. 

인문대결의문의 내용은 「병영집체훈련제도는 구체제의 산물이며 군사훈련은 교련교육만으로 충분하므로 학원병영화의 철폐를 위하여 이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것이었다고 저는 알고 있읍니다.

1. 4월 2일경 오후 2시쯤 대학본부 학생처장실에서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님을 만났을 때 총학생회칙 중 제9조 6호 “학칙개정 발의 및 사전동의권” 제9조12호 “학교관계당국자의 출석요구” 제12조 9호 중 “학교운영의 중요사항” 등 3 구절이 명백히 교권과 학사행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야기를 이수성 교수가 하였읍니다. 그래서 저는 차기 총대의원회의에서 이 대목을 개정할테니 학처장회의에서 총학생회칙을 승인하여 달라고 하자 이수성 교수님은 “개정후면은 승인이 가능하다.”고 하셨읍니다.

1. 4월 9일 19:00~22:00 신촌로타리부근 중국집인 “청원”에서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등의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회의를 하였는데 이 회의는 서강대 총학생회에서 주최 및 주도하였고 서강대 총학생회장 박성혁이 사회를 보았읍니다. 

이 회의에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제가 참석하였읍니다. 회의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의 병영집체훈련거부 상황보고와 협조책 강구, 경희대, 세종대 등 사립대학의 재단부조리문제로 인한 학원사태에 대한 이야기 등 2가지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성균관대학교 총 학생회장이 타학교가 동조해 줄 것을 강력히 총구하는 발언을 하고 “이 문제는 성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대학의 공통과제이므로 성대가 십자가를 진 셈이니 도와달라”고 하여 성대의 병집거부결의문에 서울대, 연대, 서강대의 총학생회장들이 공동으로 서명하였읍니다.

1. 4월 10일 오후 3시 28동 103호 대형강의실에서 개최되어 오후 8시 30분 경에 폐회한 제2차 임시총대의원회의에서
①4월2일 학생처장 이수성교수가 교권 침해로 규정한 제9조6호 “회칙개정발의 및 사전동의권”을 “학생권익에 관한 학칙개정건의권”으로 수정하고 제9조 12호 “학교관계당국자의 출석요구”는 삭제하였고 제12조9호 중 “학교운영의 중요사항”을 “학생권익에 관한 중요사항으로 수정하였으며 이때 참석대의원은 79명이었읍니다. 

②동 회의에서 총학생회 각 부장 즉 문예부장 권혁철(공대 전산과4), 사회부장 허남정(인문대 철학과 3), 총무부장 이용화(자연대 계통과3), 체육부장 박명기(사대 체육과3),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사회대 정치학과4)을 인준하였으며 4월혁명기념제 및 4월 가예산을 심의 승인하였읍니다. 

③3월28일 제1차 총대의원회의 당시 인문대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한 병영집체훈련거부 결의안을 62명의 대의원이 있는 가운데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총대의원회의장인 제가 결의문 작성 및 인쇄를 위임받았읍니다. 

④저는 같은 날 총대의원 회의가 끝난 후 총대의원회 사무국에서 약 10시까지 결의문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이것을 4월 11일 10:00경 사범대학 지학과 대의원인 황원기에게 8절지 시험지에 깨끗이 쓰게 한 후 「4월 혁명 기념제」포스타 및 프로그램 인쇄를 위해 마침 학교에 와있던 대한인쇄소 업자에게 부탁하여 2000매를 제작하였으며 대의원들을 통하여 주로 관학캠퍼스에 있는 1학년들에게 배포하였읍니다. 

이 때 비용은 3만원이었으며 1학기 총대의원회 예산 70만원 중 일부를 총무부장 이용화 군으로부터 지출받아 충당하였읍니다. 대한인쇄소의 전화번호나 출입업자 이름은 저로서는 알지 못하며 주로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에 거래관계를 가지고 있었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 심재철 공소사실 13-1.의 가. 김상진 추도식, 장례식)
1. 4월11일에는 많은 행사가 있었는데 ①관악캠퍼스에서는 10:00~12:00 사이 총학생회 발족기념식·복교복직 환영식 및 “고 김상진 열사”추도식을 겸한 행사가 있었는데 저는 그때 사회를 맡아 보았읍니다. 그런데 식의 진행이 늦어지자 수원농대캠퍼스에서 12:30경부터 열릴 예정이던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총학생회장 심재철 및 부회장 김학진은 식이 끝나기 15분 전인 11:55경 수원으로 먼저 출발하였고 저는 끝까지 사회를 보았는데 12:10경 식이 끝나고 나서 제가 학생들에게 “수원으로 갈 사람은 지금 본부 앞에 있는 스쿨버스에 탑승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때 웬 복학생 한 명이 와서 모든 학생이 다 수원으로 가기에는 버스 15대로는 부족하니 남은 학생들끼리 시국성토대회를 하게 마이크를 넘겨달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총학생회장도 없고 원례 계획에도 없는 순서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하면서 마이크·스피커 등을 철거시켰읍니다. 그런데 그 복학생이 총학생회장과 총학생회를 비난했기 때문에 저도 “뭐 잘못한게 있느냐?”면서 약 5분간 다투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복학생이 바로 학기초부터 “민청협”회장이고 김대중 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었읍니다. 

②마이크나 스피커 설치는 학생회간부들이 본부 4층 엠프실에 부탁하면 언제든지 설치해줍니다. 그렇게 해주라는 학생처장의 지시가 있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읍니다. 

③저는 14:00경 스쿨버스로 수원농대로 가서 18:00까지 “故 김상진 열사 장례식”과 발인을 보고나서 수원농대에서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자기는 제주이므로 일찍 나갈 수 없으니 19:00까지 중국집 “청원”에서 있는 총학생회장단 회의에 가보라고 하였으므로 18:00경 학교를 나왔읍니다. 

④19:00~22:00 중국집 “청원”에서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숭전대 등 학교의 총학생 회장단이 모여 회의를 열고 성균관대학교의 병영집체훈련 거부 농성 상황을 보고 받은 후 역시 사립대학 족벌재단문제에 대해 경희대를 위한 모금운동 등을 하자는 제의가 나왔으며 이것은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활동위원장이 이홍동(정치과4) 6.17. 지명수배 제의한 것입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은 타대학도 같이 교내시위 농성을 시작하여 병집거부 농성을 하고 있는 성대와 보조를 맡추어달라고 촉구하였으나 다른 대학은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읍니다. 이때 서울대에서는 저와 총학생회장 심재철,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이 참석하였고 심재철은 21:00경에 도착하였으며 사회는 누가 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며 모인 것은 4월 9일 폐회시의 약속에 따른 것이었읍니다. 

1. 4.12. 19:00~22:00 중국집 “청원”에서 4월 11일의 회의 끝에 한 약속에 따라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숭전대, 동국대, 이대 지명수배 후 합수부 진술
숙대 성신여대 등의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회의를 열었으며 숭전대 총학생회장 윤여연 지명수배 후 합수부 진술서 작성

이 사회를 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저는 참석치 않고 서울大에서는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만 참석하였으므로 저는 회의의 상세한 모르지만 사립대학의 족벌재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9개 대학 공동성명서가 채택되었으며 그 초안은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 심재철 공소사실 13.1.의 나. 및 17. 학생회장단 회의)
1.①4.16. 19:00~22:00 중국집 청원에서 서울大, 서강대, 연대, 성대, 건대 이대 숙대, 서울여대 등의 총학생회장단이 회의를 개최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회의를 주도하면서 4.14 최규하 대통령 특별담화에서 정부가 학원사태를 계엄연장의 이유로 든데 대해 그리고 신현확 국무총리가 또 유사한 발언을 하고 정부가 개헌주도를 해야한다는 기자회견을 한데대해 시국에 대한 공동성명서를 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 후 설명서 초안 작성을 서울대에서 일임 받은 후 다음날인 17일 오후 3시에 연세대학교에서 모여 초안을 검토한 후 오후 5시에 발표하기로 하였읍니다. 서울대에서는 심재철과 제가 참석했읍니다. 

②회의가 끝난 후 저는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함께 원풍아파트의 그의 누님댁으로 가서 성명서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심재철이 “비상계엄 해제” “정부주도 개헌 반대”, “언론자유 보장” 등의 항목을 생각해내어 제 의견을 물었고 제가 거기에 동조하자 그 중 “정부개헌 반대” 문제는 제가 초안하게 하고 “비상계엄해제” 문제는 심재철이 초안하였으며 “언론자유보장”은 심재철이 쓰다가 저에게 넘긴 것을 제가 마무리 하였읍니다. 다음날 아침 그것을 8절지에 베껴 쓴 저는 연대로 가는길에 14:00시경 교문 앞 복사실에서 20부를 복사하였읍니다. 

1. 4월 17일 15:00경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실에서 서울大, 연대 고대, 성대, 서강대, 건대 숭전대, 동국대, 이대, 숙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등의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제가 복사해 온 초안을 검토한 후 자구수정을 하여 다시 연대학생회에서 약 30부를 제록스 인쇄하여 기자들 약 10명(동아, 조선, 합동통신, 문화방송 등의 기자)과 학생회장들에게 배포하였고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호 지명수배가 성명서를 낭독하였으며 성명서의 제목은 “현시국에 대한 공동성명서”였고 내용은 비상계엄에 대하여 헙법개정에 대하여 언론자유에 대하여 등이었으며 바로 비상계엄해제 정부주도 개헌 반대, 언론자유보장 등을 주장하는 것이었읍니다. 이 성명서는 일반학생에게는 배포하지 않았읍니다.

(*주: 심재철 공소사실 13.1의 나. 기념식 행사 및 시위사실)
1. 4월 19일에는 4·19 20주년 행사가 ①10:00~11:00 우천관계로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열렸으며 약 1000 여명의 학생들과 총장, 부총장, 학처장 약 15분이 참석하셨고 총장 고병익 교수는 기념사에서 「이렇듯 떳떳하게 4·19 행사를 학생들과 함께 개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였고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는 4·19 당시의 60.4.25 교수단의 시국선언문을 낭독하였읍니다.

이것은 총학생회장 심재철군의 부탁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또한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4.19 제20선언이란 유인물을 자신이 작성, 집행부를 시켜 약 300부를 인쇄하여 기념식장의 기자들과 학생들에게 배포한 뒤 자신이 식장에서 낭독하였는데 그 내용은 「한국의 현대사는 4.19 정신과 그것을 죽이려는 자 사이의 투쟁의 기록이며 지금도 반민주와 민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으며 반드시 민주가 승리할 것이다」라는 것이었읍니다. 

②기념식이 끝난 후 약 1000여명의 학생들과 10명의 교수들은(즉 부총장, 학생처장, 교무처장, 학장 등)은 스쿨버스와 전세버스 28대를 타고 4.19 묘소를 참배하였으며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오후 2시30분경 「4.19 제20선언」을 묘지의 탑아래에서 다시 한 번 낭독하였읍니다. 

1. 4월 23일 22:00시경 봉천동 소재 세운여관에서
총학생회장 심재철,
총학생회 부회장 김학진(조선공학3) 지명수배
사범대 학생회장 진영효(교육학3)
자연대 〃 배명규( · 3)
공과대 〃 양점식( 3) 지명수배
약학대 〃 김대중(제약 3)
사회대 〃 유승호(경제 3) 지명수배
등과 제가 같이 모여 병영집체 훈련거부 계획을 수립하고 있을 때 저는 운영위원이 아니므로 총학생회장 심재철의 말에 따라 한쪽 구석에서 하늘색 볼펜으로 “존경하는 학부모님께”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초안하였읍니다. 제가 이 유인물을 초안하는 동안 운영위원들은 병영집체훈련기간인 5월 4일에서 5월 13일 사이에 학교에서 정상수업을 해주지 않더라도 학생들끼리 3·4 학년의 1학년 반으로 들어가 교양세미나를 한다거나 학술토론대회를 단과대학별로 계획 준비하기로 합의를 보고 공대 학생회장 양점식군의 제의로 학교에 정상수업을 요구하기로 하고 또 약대 학생회장 김대중군의 제의로 학교에 개별입소통지서를 발송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로 하였읍니다. 한편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국민들의 여론이 별로 좋지 못하다. 우리도 괜히 이 문제를 꺼낸 것이 아니냐? 우리가 정부에 말려드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읍니다. 

저는 이 유인물 초안을 동월 24일 09:00시경 총학생회장의 책상위에 놓아두었고 그것을 운영위원들이 약 2500부를 인쇄하여 단과대학별로 나누어서 1학년들의 가정으로 발송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1. 4.25경 학생처장실에서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가 만나 문제가 되고 있던 병영집체훈련 거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적이 있는데 이때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학교에서 개별 입소통지서를 발송하지 말것과 입소기간인 5.4~5.13 열흘동안 1학년에 대해 정상수업을 실시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 중 개별입소통지서를 학교측에서는 발송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내었고 정상수업 관계는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읍니다. 

1. 4.28 15:00~18:300 종로 한일관에서 서울시내 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가 열렸는데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이 참석하였고 본인은 참석치 않아 참석한 학교나 주도한 사람 등 자세한 것은 알기 어려우나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5월에 들어가면 학원의 이슈를 교내문제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확산시키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1. 4월 30日 11:00경 저는 수원 농대에서 어용교수 문제로 교내시위가 4월28일부터 일어났고 급기야 30일에는 학교를 점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 수원농대로 출발하였읍니다. 약 13시 30분경 농대에 도착한 저는 오후에는 원인과 상황 등을 파악해보고 나서 19:00시 ~ 5월 1일 03:00시까지 열린 평교수협의회와 학생회의 회담에 같이 참석하여 사태를 파악한 후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려면 어용교수로 지목되고 농교육과 송해균 등 세교수가 물러나거나 학생들이 농성을 끝내야 하는데 어느 한 쪽도 양보할 것 같지가 않았읍니다. 저는 농대학생회장 채정석에게 “농성을 장기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 후 5월 1일 11:00경 수원농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1. ①5월 1일 약 14:00시 조금 지날 무렵 저는 관악캠퍼스에 다시 도착하였는데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약 2000명이 모여앉아 있었읍니다. 저는 도착즉시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사먹은 후 총학생회장실로 올라가 부회장 김학진군으로부터 병영집체 응소여부를 놓고 18시부터 운영위원회가 있다는 말과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학생들이 복학생 약 300명 외에 대부분이 복학생들의 시국성토대회를 구경하는 일반 재학생들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후 사회를 본 사람이 박우섭(자연대 미생물학과) 지명수배, 이해찬 씨와 함께 활동한 민청협 회원이며, 그가 사회, 구호선창, 데모지휘 등을 담당하였으며 이들은 14:30시부터 16:00 사이 아크로폴리스와 교문사이의 진입로를 왕복하면서 “계엄해제”등의 구호와 전두환, 신현확 퇴진을 요구하는 교내시위를 벌였읍니다.
<다음 면에 계속>

제997호 2019년 5월 15일 13면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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