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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복학생 이흥국 황광우 유인물 인쇄 관여” 진술

유시민 진술서 전문 전격 공개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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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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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복학생 이흥국 황광우 유인물 인쇄 관여” 진술


<14면에 이어>

③ 14:40경 학생 약 500여명이 영등포시장 앞 도로에서 위와 동일한 구호 노래를 외치며 연좌하고 있을 때 학교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부총장, 학생처장, 교무처장, 사회대학장인 이현재교수, 인문대학장 민석홍 교수등 약 10명의 학처장들이 나타났고 약 40분간 연좌하는 동안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는 “교수들이 앞장설테이까 더 이상 나가지 말고 평화적으로 귀교하자”고 총학생회장 심재철군에게 말씀하셨으나 학생들사이에 “광화문으로라는 말이 퍼져있어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학교로 돌아간다고 메가폰으로 이야기하자 야유가 쏟아져 나오고 학생들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심재철 학생회장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광화문으로 가두시위할 것을 결정 발표하였읍니다. 저는 성대가 약해 영등포까지 오는동안 목이 다 쉬어버렸으므로 학생들을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 틈에 섞여있었고 영등포를 떠난후 그날은 교수님들은 다시 뵌 적이 없읍니다.

④ 15:30경 영등포를 출발한 서울대생은 반씩 나누어 한 패는 여의도 통과 마포를 지나 서울역으로 가두행진했고 나머지 반은 제2한강교 신촌로타리를 거쳐 광화문으로 가려다 경찰의 강력한 저지에 막혀 일단 굴레방에서 흩어졌다가 약2500여명이 마포를 돌아 서울역으로 행진하였읍니다. 

이때부터는 학생회간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19:00시~22:00시 사이 학생들은 서울大. 건대 중앙대. 이대. 성대 동국대 등이 마구섞여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경찰 저지선은 시청-광화문 사이만을 차단하고 있었으므로 시청앞 광장~서울역광장, 을지로 등을 온통 비를 맞으며 “비상계엄해제” “전두환 신현확 퇴진” 등을 외치며 가두시위 하였읍니다. 이 때 저는 학생들틈에 섞여 있었는데 21:30이 가까와오자 초조해졌고 학생들을 해산시킬일이 걱정되었읍니다.

또 경찰은 마치 공격할 태세를 취하며 페퍼포그를 뿜기 시작했읍니다. 제가 얼핏보니 경찰저지선에 서서 지휘하시는 분이 평소 서울대 정문에 오시던 분(계급은 총경) 이어서 제가 손을 흔들며 달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22:00까지 해산시킬테니까 그동안은 페퍼포그를 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자 응낙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22:00경 학생들을 (숫자는 알수 없었음) 시청앞 광장 프라자 호텔쪽에 집결시킨뒤 애국가와 만세삼창을 하고 정확히 22:05에 완전히 해산시킨 일이 있었읍니다.

1. ① 5.15 12:00 아크로 폴리스에서는 약 5000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학생총회가 열렸읍니다. 이 총회는 심재철이 14일 11시 30분경 휴교령이 내리지 않으면 15일 12:00에 학생총회를 아크로폴리스에서 다시 열겠다고 말한데 따라 개최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읍니다. 양쪽이 팽팽히 맞선 상태에서 총학생회장 심재철, 부회장 김학진이 상의하여 16:00 서울역광장에 집결하는게 어떠냐고 제 의견을 물어보았고 저는 좋다고 대답했으며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약 14:20경 “오후4시 서울역 집결”을 발표하고 학생총회를 마쳤읍니다.

이때 체육부 부장 박명기(체육 3), 문예부장 권혁철(공대 전산 3)등은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의 허락을 얻어 방송차를 마련하고 그것을 확인하러 학생처장실에 올라가서 이수성교수를 만났는데 그것이 약 15:40정도 되었을때 였고 이수성 교수가 늦었으니 내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해서 운전기사, 처장, 심재철 그리고 제가 같이 학생처 승용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는데 서울대生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제가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에게 “높은데 올라가서 찾아봅시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이수성교수가 심재철과 저를 데리고 대우빌딩 21층의 어떤 사무실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저희학교 학생들이 역광장에 있음을 발견한 심재철과 저는 학생처장님과 헤어져 역광장으로 내려왔읍니다.

② 서울역광장에 집결한 약 4000여명의 서울대生은 이때부터 21:00시 해산 때까지 계속 역광장에서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정의가 “흔들리지 않게” 등의 노래를 부르며 연좌만 하다가 20:30경 서울大 총학생회장 심 재철이 서울역에 집결한 각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결정한 사항을 발표한다면서 이의가 있드라도 따라 줄 것을 당부한 후 각 학교별로 귀교하거나 해산한다고 발표하였읍니다. 

총학생회장들이 어디에 모여서 회의를 하였는지 잘 모르겠으며 이어 심재철은 “다음단계의 행동은 오늘 저녁(15日) 22:00시 고대에서 총학생회장단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읍니다. 학생들에게 발표할때 발판으로 이용된 것은 서울대학교의 마이크로버스였으며 이 마이크로버스에 방송기재를 싣고 갔었읍니다.

③ 이 발표에 따라 서울大生중 약 2000여명은 21:00경 서울역을 출발하여 동일한 구호를 외치면서 용산, 노량진, 장승백을 경유 야간 가두시위를 벌였고 24:00시가 다 돼어서야 봉천동 고개를 넘어 학교에 도착했읍니다. 총장님의 지시인지 학생처장님의 지시인지는 알수 없으나 노량진역 못미쳐 약 5대의 스쿨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여학생일부와 낙오자들은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고 준비돼어 있던 라면과 우유를 먹고 각과 사무실 혹은 도서관에서 취침한 후 다음날 아침 모두 귀가 하였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서울역 광장에는 낮에는 약 5만의 학생 5만의 시민이 모여있어 농성하기에 괜찮지만 밤이 되어 춥고 배고프고 시민들마저 다 귀가해버리면 무슨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일단 해산시킨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④ 이날 밤에(22:00) 고대에서 열린 총학생회장단 회의에는 심재철 혼자 참석하였으므로 상세한 결과는 알지 못하며 별로 중요한 결정사항없이 16일 15:00부터의 梨大에서 열릴 전국대학대표자회의로 미룬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 심재철 공소사실 13.2.의 나. 학생총회 사실)
1. 5월 16일
① 12:00경 총학생회장 심 재철과 학생활동위원장 이 홍동이 저에게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가 사표를 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가보라고 하였읍니다. 이야기 인즉 15일 밤 서울역에서 학생들이 해산할 때 이수성 교수가 내무부장관님과 협의해서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했는데 15일 밤 이 수성교수가 학생들에게 평화적으로 해산하라고 했을 때 “학생처장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불신감을 드러내는 학생들이 많았고 또 실제로 高大 학생들이 귀교도중 경찰과 충돌했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것이 사표의 이유였읍니다. 

제가 처장실에 올라갔을 때 처장님은 총장실에 계셨으므로 저는 총장 비서실에서 약 5분간 기다리다 처장님과 함께 학생처장실로 돌아왔읍니다. 그리고는 정작 사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16日은 가두시위를 안해도 될 것 같다는 말씀만 드리고 같이 교직원식당에서 점심으로 육개장을 먹은후 본부 앞에서 헤어졌고 이때 학생처장 이 수성교수는 “자꾸 강경파에게 밀리지 말고 소신껏 학생들의 피를 흘리지 말고 활동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후 저는 이수성교수를 만난적이 없읍니다.

② 13:00시 ~ 15:00시 교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는 가두진출문제를 놓고 다시 학생총회가 열렸으나 이틀간의 피로가 겹쳐 가두진출 하고자 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으므로 사회 및 진행을 맡아본 총학생회장 심재철 및 운영위원들의 주장대로 당분간 가두시위 없이 유인물을 통해 시민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할 것이 결의되었읍니다. 저는 이 회의에 참석지 않고 학생식당에서 쉬고 있다가 16:00시경 일찍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③ 5.16. 15:00 ~ 5. 17. 사이에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대학 대표자 회의에는 심재철과 이홍동이 참가하였고 저는 그 후 위 두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한적이 없으므로 회의의 경과나 흐름 내용, 결정사항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읍니다. 단지 뉴스에 59개 대학 90여명 참석이라는 사실이 방송되었기에 알고 있을 뿐입니다.


1. 5월 17일
① 10:00경 김 병곤(복학생, 경제과4)이 저를 찾아와 총대의원회사무국실에서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지금 대세가 우리한테 유리하다, 이대에서 열리는 총학생회장단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런지 모르지만 이 대세를 몰아 19일과 20일에도 가두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해 저는 “예, 알았읍니다. 하지만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총학생회장이 돌아오면 이야기 해 보겠읍니다.”라고만 대답하였읍니다.

② 11:00시 ~ 12:00, 사이에
16일 학생총회에서 유인물로 홍보활동을 하려했으므로 도서관과 IMC(교육매체제작소)의 인쇄기 사용을 허락받으러 교무처장님과 학생처장님을 각각 교무처장실 학생처장실에서 만나 부탁드렸는데 교무처장님은 I.M.C관이 교무처소관이고 원칙적으로 교육매체를 제작하는 데만 사용되게 되어있으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고 이 수성 학생처장님은 학생처 소관인 도서관 인쇄기에 대해서만 도서관장앞으로 공문을 발송하여 협조토록하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러나 실제로 12:50경 도서관에는 직원들이 (토요일이라) 다 퇴근한 뒤여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총학생회부회장인 김학진이 16:00경 총장님을 공관에서 찾아뵙고 허락을 맡아 IMC관의 마스터 인쇄기는 약 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여기서 어떤 유인물을 인쇄하였는지는 저로서는 잘 모르며 복학생 이흥국 황광우 등이 거기에 관여하였다는 것 밖에 모릅니다.

③ 원래 5.16.15:00부터 梨大에서 열린 전국대학대표자 회의에 참석하러 간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학생활동위원장 이 홍동이 돌아오면 5월17일 16:00부터 총학생회장실에서 앞으로의 방향수립을 위하여 운영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위 두사람이 돌아오지 않아서 회의는 하지 못하고
총학생회 부회장 김학진 (조선공학3)
인문대 학생회장 노창준 (동양사3)
경영대 〃 정철상 (경영3)
법대 〃 이철수 (법3)
사범대 〃 진영효 (교육3)
공대학생회장 양점식
총여학생회장 이재인 (교육3)
가정대 학생회장 김경미 (의류3)
문예부장 권혁철 (공대 전산3)
등과 같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이대에서는 무슨회의를 24시간 넘게 하느냐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18시25분경 이대쪽에서 익명의 학생(서울大生)으로부터 총학생회장단 검거소식이 들어왔으나 믿을 수가 없어서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에 집행부실에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별다른 소식을 얻지 못하였고 고 병익 총장님도 모르고 계셨고 이 수성 학생처장님은 출타 중이어서 “혹시 연락오면 학교로 전화주시라고 전해달라”고 댁에 부탁드린 후에 19:10 정도에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 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본인이 받지는 않았으며 누가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나 내용은 “이대에서 도망쳐 나왔는데 심 재철의 검거여부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고 19:30경 이화여대의 평학생 두 명이 도서관에서 목격했다면서 학생회장실에 찾아와서 검거소식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비슷한 시간에 총학생회장으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와 노량진에 있다는 전화가 왔읍니다. 

저는 19:10경 이 홍동의 전화를 받고나서 사실임을 확신하고 학생회관 각 방을 다니면서 전달해서 집행부실에 있던 학생들을 귀가토록했고 학생활동위원회실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복학생 이해찬, 이범영, 김병곤, 연성만, 심상완 지명수배 외 3명 정도 도합 8~9명이 있었는데 저는 소식을 전해주고 다시 총학생회장실로 돌아왔읍니다. 약 20:30 ~ 21:00시 경 학생활동위원회실에서 있던 복학생들이 총학생회장실에 들어와서 “사태가 매우 급박한 것 같으니 태연한 척 말고 빨리 피하자.”고 말하고는 자기들 먼저 학생회관에서 빠져나갔읍니다.

그리고 나서 21:00시~22:00사이 대부분의 운영위원 들이 빠져나갔고 20:10경 제가 학생처장 이수성교수의 전화를 받았을때 운영위원중 경영대 학생회장 정철상군과 공대부회장 안봉수가 남아있었는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의 법적의미를 학생들은 잘 모를테지만 어쨌든 빨리 피해서 나가라” “전화거는 곳은 문교부 차관실이다”는 내용의 전화를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후 이 두사람 마저 빠져나가고 저와 체육부 차장 문호준(체육2), 복학생 이흥국, 이흥국의 여동생 등 4명이 총학생회장실에 남아 있다가 23:40경 경찰에 연행되었읍니다.


1. 유인물은 날짜별로 배열할 수 있을 만큼 제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므로 따로 진술하겠읍니다.
① 저희 학교내의 등사시설은 총학생회에 수동식 윤전기 1대, 등사기 2대, 각 단과대학 학생회 및 편집실에 최소한 1개의 등사기가 있고 각 과마다 과에서 나오는 유인물이나 학생들의 주소록을 만들기 위한 타자기 및 등사기 수동식 윤전기 혹은 복사기가 있읍니다. 그리고 도서관이나 IMC의 인쇄기는 여태껏 학생활동에 쓴 적은 이번의 IMC 인쇄기 이용이 처음입니다. 

이번 14日~15日 가두시위를 전후하여 배포된 유인물은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시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사실을 고발한다” “물가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계엄하의 언론통제”등 6~7종이 되나 그 중 제가 알고있는 것은 이흥국(복학생, 법4) 황광우(복학생, 경제과)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정치4) 사회부장 허남정(철학3) 지명수배 후 합수부 진술서 작성 등이 유인물을 주로 담당하였으며 이번에 나온 유인물 중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 박문식(경제4)군에 의해 초안되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유인물 인쇄 및 배포는 총대의원회 결의문 외에는 저와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유인물에 대해서 더 상세히 아는 바는 없읍니다.

1. 위 진술이 사실과 틀림 없음을 확인합니다.
1980. 6. 12
자술인 柳 時 敏
<정리= 강하현기자>


제997호 2019년 5월 15일 15면

목포투데이 기자 / mokpotoday1@naver.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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