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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만세운동기념 전국 청소년백일장대회 /대상 김 영진 <서울 수명고3>
2012년 04월 26일 [목포투데이]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 한 줄기가 안 방바닥을 찔렀다. 예고도 없이 각막을 침범해온 햇빛 탓에 눈이 부셨다. 이따 전화하면 엄마 회사 3층으로 와. 잠에서 덜 깨어난 몽롱한 귓가에 엄마의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엄마는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옷 따뜻하게 입고,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나를 흘긋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는, 천천히 물결치는 파도처럼 잔잔하고 차분했다. 오늘 같은 날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짜증도 안 나는 걸까. 오늘은 아빠의 기일이고 게다가 휴일인데……。나는 신발끈을 묶는 엄마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3층에 도착하자 넓은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은 빽빽하게 베이지색 칸막이가 쳐져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귀에 헤드폰을 낀 채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음성이 귀를 간질였다. 사람들의 말투와 억양이 모두 똑같았다. 여기야. 그때, 사람들 틈에서 엄마가 머뭇거리며 손짓을 했다. 소심한 엄마답게 손짓도 소심해보였다. 나는 미로같은 책상사이를 지나 엄마의 곁으로 갔다. 저기 밖에 휴게실에서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 나온다는 걸까. 멍하니 핸드폰을 액정만 쳐다보던 나는 휴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또 다시 사람들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제각각 따로 노는 목소리. 그 목소리 틈에서 엄마의 느린 음성이 들려왔다. 그……。정말 죄송합니다……。나는 사무실 입구에 멍하니 서서 그런 엄마를 지켜보았다.

기본급만 날름 받아가겠다는 거야 뭐야? 엄마보다 열 살 쯤은 더 어려보이는 여자가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기죽은 엄마의 말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엄마는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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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며칠 간 내린 비 때문에 비탈길은 유난히 더 미끄러웠다. 봉긋하게 솟아 있는 아빠의 무덤이 시리고 외로워 보였다. 무덤 뒤로 아득하게 보이는 바다가 작게 파도쳐 모래사장 위에 진한 자국을 만들어 냈다. 엄마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냈다. 그리고는 무덤가에 소주를 뿌렸다. 소주를 뿌리는 엄마의 손길은 느리고 더뎠다. 엄마는 비닐봉지에서 담배와 라이터도 꺼냈다. 그런 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살아생전 담배를 좋아하셨던 아빠를 위해 무덤에 꽂아 드렸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차가운 공기를 타고 하늘로 피어올랐다. 벙어리라도 된 듯 엄마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어깨를 들썩이기만 할 뿐. 나는 길게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무덤가 뒤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너무나도 작게 일렁였다. 모래사장위에 아주 희미하고 작은 자국만 남겼다.

그때, 시끄러운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 중략 .......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엄마는 나를 등진 채 천천히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서서히 떠나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에는 다홍빛석양이 붉게 번져 있었다. 나는 목석처럼 가만히 서서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의 머리 위 마른 잔가지는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해보였다. 엄마의 등 너머 아득히 보이는 바다는 어느새 아까보다 거세게 출렁였다. 모래사장 위에 자국도 더 거세게 출렁였다. 모래사장 위에 자국도 더 커다래졌다. 그만 좀 하세요……。엄마의 희미한 목소리가 파도소리에 덧입혀졌다. 바다는 어느새 주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나는 한참을 엄마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엄마의 등이, 서서히 주홍빛 노을에 잠겨갔다.

부제목: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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